드디어 때가 됐다.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던가. 이젠 놓치지 않는다. 너의 영혼을, 마음을 전부 내 것으로 만들 최고의 기회는 네가 만들어준 거야. 자신의 나약함에 좌절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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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해진 시야를 바로잡고 날카로운 바람을 가르며 속도를 올린다. 그저 오랜만에 인간세계에 내려온 탓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어째서 처음부터 짙은 붉은색 안에 숨어 녹아 있던 어두운 푸른빛을 진작 눈치채지 못한 걸까. 나는 그만큼 동요하고 평정심을 잃었다고, 또 이 이상 하계에 머무는 건 위험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제멋대로 움직이는 몸은 그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아스타의 기운에 휩싸인 남자에게 축복을 내려준 뒤 깨달았다. 그의 마법이 내 것으로 인해 인간의 몸에선 사라졌지만 반대로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리는 꼴이 되어버렸다는걸. 이건 절대 똑같은 패턴이다. 사소한 감정에서 어긋나고 신뢰가 깨지고 소중한 이를 잃게 되고 서로를 증오하게 되는 몇만 년간의 우리들의 관계를 인간들에게도 똑같이 보여줄 생각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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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과 안의 온도차가 너무 커져버린건지 너무 낡아 곧 깨져버릴 듯한 창문엔 물기가 서렸다. 그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실루엣이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에 한숨을 쉬며 결계라도 칠까 하던 찰나, 멀리에서도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에 눈살을 찌푸린다. 설마, 성가신 일을 해버린 거야, 그 녀석?
유리의 물기를 없애고 실눈으로 바라보면 녀석의 몸을 마치 소중한 것인 것 마냥 지키는 푸른 원. 미카엘의 은총.
왜 하필 지금 같은 때, 너는 나를 찾는 거야?
“응, 역시 너였군. 오랜만이군 아스타 로스.”
낮게 울리는 상냥한 목소리에 뒤돌아보면 그토록 애타게 만나고 싶었던 녀석이 덩그러니 서있다. 하지만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살짝 붉어진 얼굴과 서있기도 힘겨워보이는 녀석을 보곤 절대 웃음이 나올 리가 없었다.
“어이, 뭘 한 거야… 설….. 설마 저주에 걸린 거야?”
대천사인 네가 어째서 그런 상태가 되는 건데. 너 강하잖아? 아니, 그전에 그런 모습이라면, 지금 너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 못 참는다고?
“아아.. 조금 위험한 상대를 건드려 버려 서말이다. 돌아가기 전에 너에게 해줘야 되는 말이 있어서 잠시 들렸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 나의 타락한 영혼이 그에게 손을 뻗었지만 닿지 못하고 그의 뒷말 또한 이어지지 않았다. 놀란 기색을 한 녀석은 방 안을 서둘러 둘러보다 구석에 자리 잡은 옷장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의 이름을 부르려던 그때, 침대가 크게 흔들리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으앗.. 싫어! 그만… 아파! 흐아아아악!”
부서질 듯 크게 몸을 휜 카라마츠는 괴로워하며 비명을 질렀다. 눈이 굳게 닫힌 걸 보아선 아직 영혼은 정신세계에서 나오지 못한 채. 원래라면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나면 눈을 뜰터였다. 그때까지는 외부의 방해받지 않도록 마법을 걸었는데 어딘가 잘못된 걸까라고 생각했지만 금방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왼쪽 어깨에서 나오는 심상치 않은 빛. 서둘러 후드를 찢을 듯 벗기면 보이는 익숙한 문양은 지옥의 끝자락에서 지겹도록 봐왔던 것이었기 때문에 경악을 참지 못했다.
“히히, 괴로운 걸까나, 어때? 미카엘의 얼굴로 천천히 망가져가는 그를 보는 건? 아아, 상상 이상으로 야하잖아.” 일순 창문과 문이 거세게 열리고 바로 뒤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돌아왔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녀석의 몸을 관통할 생각으로 쇠사슬을 불러들였지만 특유의 보랏빛 바다뱀이 간단히 쳐내버렸다.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한 녀석은 분명 카라마츠의 두 번째 동생. 하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불쾌한 오오라가 그의 정체를 분명히 알려준다.
“루시퍼, 네 녀석이 여기에 왜 있지? 인간 세계에 올라올 정도로 여유가 없을 텐데? 신에게 알려진다면 너의 영혼은 이 자리에서 파멸이야. 조용히 지옥의 밑바닥으로 돌아가.”
소름 끼치는 표정을 지으며 한 발자국 물러난 그는 두 뱀들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오랜만에 옛 친구를 봤는데 그렇게 차가운 말 하지 말라고. 얼굴들이 보고 싶어서 온 거니까. 그리고, 조물주로서 나의 작품들을 감상하러 왔어. 그러니까 길 비켜주지 않을래?”
“내 녀석이 조물주라니, 웃음도 안 나오는데. 네 자식이 만든 거라면 분명 쓰레기일 테고 여기서 비킬 마음 없어. 꺼져.”
“그렇게 말하지 말아 줄래? 저 녀석 들으면 울 거야? 뭐, 그것도 그것 나름 재미지만. 그리고 아직 너의 영혼의 파편, 내가 갖고 있는 건 기억나지 않나 보네? 너와 다르게 신의 자리를 넘볼 때 아무런 대책이 없지 않았으니까. 다치기 전에 순순히 비켜”
두 손위에 올려진 3개의 구슬. 한 개는 어두운 붉은빛을 내고 있지만 나머지들은 맑고 투명한 아름다운 노랑과 분홍이다. 저 색의 의미를 아는 건 옛 대천사 10명뿐. 게다가 파랑이 없어.
“웃기지 마! 그때 너에게 맡긴 천사들의 일부를 네 녀석이 아직까지 들고 있을 리가 없잖아!”
“뭐뭐, 시험해 볼까? 이 붉은색이 네녀석꺼였던것 같은데, 어떤 명령이 좋으려나… 그나저나 미카엘은 어디 있어? 녀석, 지금쯤 제 몸 가누기 어려울 텐데.”
“이치마츠!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형제의 모습에 당황하며 필살적으로 달려들어온 그를 감싸 안은 건 반사적이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반대편 벽으로 부딪히고 덕분에 등에 박힌 보랏빛이 더 깊숙이 박힌다.
“하하 핫, 설마 네 녀석이 인간 따위를 구할 줄이야! 그새 정이 든 건가? 아니면 미카엘의 은총 때문에? 그런 쓸모없는 감정에 휩쓸리니까 지기만 하는 거야 아스타.”
몸에 마비가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거기에 감싸 안은 녀석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미카엘의 힘이 나를 거부하면서 몸이 타들어간다. 얼른 녀석을 반대편으로 밀어버리고 순간 약해진 마력에 깨진 결계 뒤로 카라마츠에게 다가가는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일순 단단한 것과 닿아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게 됐다.
“에….?”
“어이쿠, 안되지. 지금까지 수고했어, 아스타. 너의 역할은 여기까지야.”
뻗은 손이 닿지도 못하고 굳어버린 몸은 말을 듣지 않아 무너져 내린다.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쓰다듬는 루시퍼의 손을 비난하면서 나의 첫 패배의 기억을 떠올린다. 난 또 이용만 당하는 건가.
“드디어 손에 넣었어… 카라마츠… 언제쯤이면 미카엘의 조각을 갖고 타락하게 될까..”
기다란 손가락은 카라마츠의 목을 타고 내려가 문양이 있는 어깨에 멈춰 섰다. 살짝 누르면 터져 나오는 높은 신음소리.
“아픈 거지? 괜찮아, 너는 미카엘의 일부를 넣어서 만든 특별한 인간이니까. 이 정도로 죽지 않아. 내가 너에겐 신인 거고 넌 내 거야. 더 이상 놓치지 않아.”
“하응, 아앗…. 싫어.. 아픈 거 이제 그만….. 후아”
분노가 들끓는다. 하지만 무력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기 마련이다.
“이치마츠….? 너 뭐 하는 거야..”
반대편 벽 쪽에서 들리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바꾸면 인간의 절망적인 두 눈에 비치는 루시퍼의 모습은 그저 괴물 그 자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걸까. 사랑하는 동생을 빼았긴 것도 모자라 다른 동생 또한 인외라는것을,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있지, 거기 좁지 않아? 이제 그냥 나오는 게 어떨까 미카엘? 아님 걸어 나올 힘도 없는 거야?”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올려다본 광경. 눈을 의심했다. 절대 도망갔을 거라고, 녀석이라면 분명 이동 마법 정도는 쓸 수 있었을 거라고 믿었는데. 인형처럼 힘없이 끌려 나온 미카엘은 바다뱀들에게 손발이 구속되어 루시퍼 앞에 놓였다. 얼굴빛도 전보다 심하게 붉어지고 숨소리도 전혀 고르지 않다.
“드디어 널 만났어 미카엘. 너도 내가 보고 싶었지?”
그 손을 뻗지 마. 죽여버리겠어. 손 안에서 날뛰는 쇠사슬들과 다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번에도 너를 구할 수 없어. 미안, 너의 슬픈 표정, 더는 보고 싶지 않았는데.
“이치마츠! 너 이게 뭐 하는 거야 설명하라고!!”
“에, 너 정말 아스타의 영혼을 넣은 것만큼 짜증 난다고. 그다지 말 안 해도 대충 감으로 알라고.”
순간 멈춰진 손. 잘 살펴보면 그의 손끝이 살짝 검게 변했다. 아직 미카엘의 결계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루시퍼도 섣불리 그에게 손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제대로 말하면 저 붉은 파카가 소리치자마자 미카엘 주위에 밝은 막이 생겼다. 즉, 미카엘이 녀석에게 내려준 건 은총뿐만이 아니야.
“쳇, 성가셔. 좋아, 시간도 조금 남았으니 옛날이야기를 해볼까? 어때, 아스타. 너도 한마디 해달라고. 저 녀석은 너의 분신 같은 존재니까 지금부터라도 너의 기억을 넣어주지 않으면 불쌍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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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이 결말입니다!!!
과제 힘드네요... 대학생활하시는 모든 학생분들과 사회인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곧 결말로 다시 찾아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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